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동기 시대 (문단 편집) === 초기 === * [[하남시]] [[미사리]] 유형: 판석 부위 석식(바닥에 판돌 깔고 주위에 돌로 둘러친 형태) 또는 위석식 노지(화덕) 방형(정사각형) 또는 장방형(직사각형)의 주거지로 가끔 기둥자리에 초석이 설치되는 경우가 있으며, 새김 덧띠 무늬 토기(각목돌대문 토기)[* 최몽룡 "한국 선사고고학의 연구동향", 한국의 청동기-철기시대 전기 문화, 1. 청동기시대의 문화, 각목돌대문토기의 경우 소주산 유적의 상층에 해당되는 기원전 2450년부터 기원전 2040년까지의 다롄시(大連市) 스후이야요촌(石灰窯村), 자오류다오(交流島) 허비지(蛤皮地), 랴오닝성(遼寧省) 워팡뎬시(瓦房店市) 장싱다오(長興島) 산당(三堂) 유적과 기원전 2050년부터 기원전 1750년까지의 지린성(吉林省) 화룽현(和龍縣) 동청향(東城鄕) 싱청촌(興城村) 삼사(三社)에서, 그리고 기원전 3420년부터 기원전 1550년까지의 연해주의 자이사노프카의 시니가이와 올레니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어 서쪽과 동쪽의 두 군데에서 함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많다.]라는 아가리 쪽에 오돌토돌한 것들이 붙어 있는 토기로 대표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논란의 여지가 거론되었다.[* 이홍종, 허의행 "호서지역 무문토기의 변화와 편년" II. 유형과 지역권, 1. 유형의 구분, 청동기시대 시기구분은 2분기설과 3분기설로 구분된다. 2분기설은 전기(가락동유형, 역삼동유형, 흔암리유형)와 후기(송국리유형)로, 3분기설은 전기(가락동유형, 역삼동유형, 흔암리유형), 중기(송국리문화), 후기(점토대토기문화)로 구분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대체로 3분기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졌으나, 후기로 구분된 점토대토기는 송국리유형 단계부터 초기철기시대에 걸쳐 존속하기 때문에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에서 독자적인 존속시기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본고는 2분기설을 바탕으로 유형을 구분하고, 최근 제시된 미사리유형의 조기설은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에 본고의 검토대상에서는 제외하였다.] [[파일:attachment/청동기 시대/1.jpg]] 새김 덧띠 무늬 토기 [[파일:attachment/청동기 시대/2.jpg]] 판석 부위 석식 노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